
이성엽 박사(이하 이성엽) 한국강사협회를 만드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병재회장(이하 안병재 ) 한국강사협회는 대한민국 인재강국 건설을 위해 많은 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가진 명강사 1,000명을 선발, 육성할 목적으로 HRD교수진과 기업인재육성 전문강사와 각기관 및 기업의 인재육성 책임자들이 함께 창립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비영리 법인입니다. 존경받는 대한민국 명강사 문화를 만들어 보자는 HRD 분야에 훌륭한 분들의 뜻을 받들어 초대 협회 회장으로 겸손하게 섬기미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했을 뿐입니다.
이성엽 한국강사협회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안병재 대한민국 국가경쟁력은 기업경쟁력에 달려 있다. 기업경쟁력은 인재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 인재경쟁력은 인재를 육성하는 강사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 “대한민국 경쟁력은 강사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는 슬로건으로 대한민국 강사들이 시대변화에 앞선 역량계발을 지원할 목적으로 탄생한 대한민국 대표 강사협회입니다. 협회는 회원들의 강의역량개발 목적으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매회 200명 이상 참석하는‘대한민국 명강사초청세미나’와 ‘명강사육성세미나’, 세계적 명강사초청세미나, 대한민국 명강사경진대회 등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이화여대 평생교육원과 협력하여 ‘최고지도자급 명강사양성’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성엽 강사협회의 설립목적이 무엇인지요? 안병재 ‘초인재강국 건설을 위한 대한민국 명강사 1,000명을 육성 한다’는 사업 목표로 협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물적 자원과 자본이 열악한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길은 인재육성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람직한 인재육성을 책임질 존경받는 한 사람의 ‘명강사’가 탄생하기까지는 많은 지도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HRD 전문 교수님과 산업교육분야 명강사 선배님들이 ‘참부자 정신’으로 협회 회원들의 역량계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대한독립협회가 독립투사를 육성.지원함으로써 민족독립기반을 조성했듯이, 한국강사협회도 인재육성을 책임질 명강사를 육성, 지원함으로써 세계 초인재강국의 기반 조성에 앞장서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뜻있는 HRD 전문가들이 한국강사협회를 탄생시켰고, 한국강사협회가 명강사를 탄생시키겠다.”는 것이 강사협회 설립 목적입니다. 이성엽 강사협회 회원은 몇 명이나 있나요? 안병재 회원 약15,000명 정도입니다. 협회에서는 많은 회원들이 있지만 강사로서 적극 활동하는 분들은 1,000여명 내외로 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2의 인생을 명강사를 비전으로 생각하고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성엽 협회는 어떤 분들이 함께 설립하신 것인지요? 안병재 누구나 설립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목적과 가치관을 가지고 설립했으며,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강사협회와 유사한 협회들이 많이 설립되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국강사협회는 ‘참부자 정신’으로 설립된 협회입니다. 많은 명강사들이 ‘참부자 정신’으로 협회를 돕고 있습니다. ‘참부자란’ 많은 것을 가진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베푸는 자를 말합니다. 따라서 ‘참부자 정신’이란 많은 것을 베풀려고 노력하는 정신입니다. 지식·정보화 사회는 지식과 정보의 빈익빈 부익부가 점점 심화되는 시대입니다. 많은 것을 가진 분들이 더 많이 베풀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으로 나눔에 인색한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신업강사의 세계에서는 강의 비결과 자료는 절대 공유하지 않으며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불신이 팽배해 있습니다. 존경하고 훌륭한 명강사들을 만나 ‘참부자 정신’을 설득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이상적인 발상이라고 비판도 받았지만, 지금은 강사협회의 기본 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식과 정보는 서로 나누면 나눌수록 가치는 배가 되고 나누는 자가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시대가 도래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강사협회 회장단과 임원들은 ‘참부자 정신’으로 협회 발전을 위해 무보수로 헌신하고 있으며, 지식과 정보 나눔에도 앞장 서고 있습니다. ‘참부자 정신’이 없다면 강사협회도 없을 것입니다. 이성엽 따로 하시는 일이 있으신데, 협회를 만들고 사람을 조직하고 개인적인 열정과 시간을 많이 쏟으셨네요. 왜 그렇게 협회활동을 열심히 하시는지요? 강사협회가 명예회장님께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안병재 초인재강국 건설을 위한 대한민국 명강사 1,000명을 육성을 훌륭한 분들이 ‘참부자 정신’으로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 명강사’를 비전으로 생각하고 지식·정보 나눔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지식과 정보의 차이만큼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소외되고 강의들을 기회가 없는 분들에게 나눔의 강의를 실천하는 일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책임 맡고 있는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최고명강사과정 출신들이 모여서 ‘아강모(아름다운 강사들의 모임, 회장 박상묵)’을 만들었습니다. 강사를 초빙할 수 없는 기관이나 기업에 무료 봉사 강의를 지원할 목적으로 탄생된 것입니다. 지난달에 탈북대학생 인턴 강의를 지원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다문화 가정 강의도 지원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부자 정신’으로 존경받는 강사 문화를 구축하는 일에 썩어지는 밀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족함이 아직 많지만, 나눔 풍토를 조성하는 일에 마중물이 되고자 합니다.
이성엽 강사협회 이전에 파사모포럼을 만들어서 대한민국 프리젠테이션 문화를 바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파사모와 관련된 이야길 해 주실수 있으신지요? 안병재 2002년 2월 23일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산업교육의 발전을 위해 내가 할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가 지식과 정보가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는 것을 깨닫고 ‘참부자 정신’으로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을 먼저 나누겠다는 마음으로 직접 제작한 고급 PPT 자료를 포럼 회원들에게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파워포인트 제작기법도 회원들에게 ‘참부자 정신‘으로 강의를 지원했습니다. 마침 프리젠테이션의 시대가 열리면서 회원들이 폭발적으로 가입하여, 삼성경제연구소의 3,000여개 포럼에서 1위포럼으로 등극되었고, 청와대 업무보고 자료를 제작·지원하면서 대한민국 프리젠테이션 문화를 개척·발전시킨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성엽 저는 강사협회와 파사모라는 조직에 가입은 하지 않았지만 유심히 활동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랜기간 잘 운영되는 것을 보고 가끔 놀라기도 하는데요. 우리가 몇 명이 모여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도 의견일치가 되지 않아 마음고생할때도 많습니다. 원래 그렇게 사람을 만나고 조직화 하시는 것을 좋아하셨나요? 안병재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학생회장을 맡으면서 학교 발전을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개인적인 일보다 함께하는 분들을 지원하고 돕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새롭게 개척하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스스로 때로는 외롭고 힘들지만 개척자로 살기로 마음 먹은 셈이죠? 자신을 내세우는 것보다 많은 분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힘든 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오해도 받고 질투도 받지만, 나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기에 별로 의식하지 않고 초심으로 하고 있죠? 새롭게 시작한 일이 제대로 성공하면, 그 자리에 연연하는 것을 싫어 합니다. 파사모포럼도 2년만에 최고포럼을 만들고 다른 회원에게 시삽(Sysop) 자리를 넘겼고, 강사협회 회장직도 마찬가집니다. 제가 가장 많이 헌신했다고 기득권 논리를 가진다면 더 가치있는 새로운 일을 할 기회를 놓치게 되니까요.
이성엽 조금 난감한 질문을 드려볼까 하는데요. 명강사모임이라고 하는데 모이신 분들이 스스로 명강사라고 지칭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실한 강사들의 모임, 특별한 강사들의 모임 등의 다른 이름도 많을텐데 왜 명강사라고 하셨나요? 안병재 명강사는 비전입니다. 성실한 강사나 특별한 강사는 특징이지 비전이 될 수 없습니다. 비전은 많은 강사들이 함께 꿈을 꿀 수 있는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명강사라고 지칭하는 것을 적절치 않다고 말하시는 분들은 명강사를 자격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자격도 되지 않는 강사들이 스스로를 명강사로 소개하는데 저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강사협회에서는 명강사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협회가 말하는 ‘명강사’란? 시대변화에 앞선 ‘3C’를 겸비한자, 즉 존경받을 수 있는 인격(Character), 감동을 주는 명강의 실력(Competence), 사회와 국가 발전을 위한 헌신(Commitment)의 세 가지를 갖춘 강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강의 실력만 가지고 명강사라 할 수 없습니다. 강의 내용대로 존경받는 삶을 살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삶. 그것이 명강사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명강사는 비전일 뿐입니다.  이성엽 다양한 색깔 다양한 특성의 사람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이끌고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데 잘하시는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안병재 나를 버리고 남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죠. 일종의 셀프 리더십이라고 말할 수 있죠? 가치있는 일에 즐겁게 도전하자! 나눔을 먼저 실천하자!! ‘참부자 정신??막?변화시대의 마중물이 되자!! 문제가 있는 곳이 나의 일터다! 긍정적인 해법으로 멋지게 도전하자! 등등 늘 자신에게 셀프 리더십으로 용기와 힘을 불어 넣고 있죠. 이성엽 현재 하시는 일이 HR컨설턴트인데 언제 어떤 계기로 이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안병재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께서 “넌 선생하면 잘 하겠다”라고 하신 말씀이 늘 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자리 잡고 있었죠. 현대자동차에서 지점장으로 잘 나가고 있었지만, 그 길은 제가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87년도 전국판매왕에 등극이 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부터 사내강사에 위촉되어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업보다 강의가 더 재미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앞으로 내가 갈 길이 많은 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선생은 되지 못했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HR컨설턴트로 행복하게 강의 잘 잘 하고 있죠. 이성엽 현대자동차 교수로 계시다가 프리랜서 직장인으로 변신하셨는데, 40대에 변화를 주긴 쉽지 않습니다. 어떤 계기나 목표가 있으셨나요? 안병재 어릴 때 꿈이 학교 선생이었거든요(하하) 잘 나가는 회사 임원도 꿈이었지만, 변화 시대에 임원(임시 직원)으로 불안하게 일하는 것보다 평생학습시대에 평생직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지만 실행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있었죠. 제2의 인생의 출발은 가장 자신감이 충전할 때,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는 생각으로 잘 나가던 H차 지점장(부장) 자리를 던지고 나왔죠. 지금 돌아보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강사로 바쁘게 뛰어 다니고 있거든요. 무엇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은 신이 내게 주신 축복이라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성엽 자동차 판매왕으로 알고 있는데 자세히 소개 좀 해주십시오. 안병재 처음에는 고객에게 자동차를 팔려고 했지요. 마음 고생만 심하게 했죠. 생각을 바꾸었죠. 고객 일을 기쁘게 돕는 사람이 되자고 셀프 리더십을 발휘했더니, 감동을 받은 고객들이 충성고객으로 발전하여 자동차 영업을 돕기 시작하며서 전국판매왕이 되었죠. 저를 후원해 주는 충성고객이 10명이 확보되면서 다른 동료들보다 10배 판매성과를 올렸으니까 판매왕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혼자의 힘으로 도전한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죠. 이성엽 현대자동차 판매왕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현대자동차 연수원의 교수가 되셨나요? 안병재 제가 판매왕이 되었을 때,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하더군요(하하). 주변 동료들이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에 판매왕이 되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자동차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객관리가 중요하게 되었고 그 분야의 사내강사로 출발하게 되었으며, 본사 특판과장으로 발탁되어 우수한 성과를 올리자, 현대자동차 최연소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가장 실적이 부진한 최악의 지점을 맡아 지점장으로 1년만에 최우수 지점으로 만들었죠. 그러자 이번에는 회사에서 현대자동차 전국 지점장을 교육하라고 연수원 전임교수로 발탁이 되어 5년간 영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영업인재육성에 전문가로 인정을 받게 되죠. 이성엽 현대자동차시절도 열정으로 보내셨군요. 정말 우연한 현재는 없다는 생각이 다시 듭니다. 당시 전국 판매왕까지 하셨다면, 계속 세일즈를 하지 않고 강사로 변신하신 것에 후회는 없으신지요. 안병재 계속 세일즈를 했다면 아마도 자동차딜러 사장이 되어 있겠죠?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부자가 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더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멋진 일이 잖아요! 정말 매력있는 일이죠. 더군다나 강사협회 회장을 거쳐, 지금은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최고지도자급 명강사과정을 주임교수로 일하고 있느니 어릴 때 꿈을 이룬 셈이죠.
이성엽 세일즈 전국 1등을 그렇게 하게된 자기만의 비결이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안병재 고객에게 상품을 팔지 않고 자신을 파는 것이죠? 자신의 매력을 파는 것은 세일즈나 강의나 같은 것이라 생각해요. 나만의 가치. 매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요구되고 있고,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강사라는 직업이 최고라 생각되요. 가르치는 일은 엄청난 학습효과가 있는 일이거든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는 어떻게 하면 고객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면 교육생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죠. 자나깨나 이성엽 세일즈의 최고가 되기 위해서 세일즈 현장에 계신 분들에게 비결을 알려주신다면? 안병재 세일즈를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상품을 세일즈할 것이 아니라 고객과 관계 형성을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판매왕들의 공통점은 상품 세일즈보다 고객관리에 남다른 노력과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는 것만 기억해 주세요. 어려운 세일즈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태도와 능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쟁은 치열하고 고객의 니즈는 까다롭고 본사 지원은 줄어들고 있고 목표 부담은 점점 가증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냥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영업이 어려울 수 밖에 없죠. 세일즈 현장에 나서서 치열한 경쟁과 고객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지금도 어떻게 제가 세일즈를 했는지 의아해 할 때가 있죠. 모든 것은 고객님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이상하게도 제겐 충성고객이 많았습니다. 충성고객을 확보하는 것은 천군마마를 얻는 일입니다. 자신만의 매력을 가꾸어 보세요. 매력은 남다른 가치관과 삶의 철학, 열정, 긍정 마인드,고객 중심적 사고, 고객에 대한 충성심 등입니다. 충성고객이 없다면 정성이 부족한 것이겠죠? 고객의 기대에 2% 정성이 부족한 거죠.
이성엽 지금까지 성장함에 있어서 나의 어떠한 면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안병재 매사에 긍정적인 셀프리더십! 하고자하는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우울해져요. 그 때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지요. 주로 교회 금요철야 예배에서 기도를 하죠. 내가 짐지고 있는 문제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 도움을 기다려요. 그리고 할 수 있다는 믿음, 신념을 가지면서 선택과 집중하죠.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죠. 그 결과 어떤 일을 추진함에 있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신념이 강한 편이에요. 누구나 새로운 일 앞에는 두렵죠. 하지만 신념이 강하면 두려움은 실체가 아닌, 그림자라는 것을 알게 되죠. .
이성엽 마음속에 따르는 멘토가 있으신지요. 소개해주실수 있는지, 그리고 왜 멘토로 삼으셨는지? 안병재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멘토가 계셨습니다. 초증학교 때는 안영출 선생님, 중학교 때는 오장환 선생님, 직장 생활에서는 김만유 부사장님, 산업강사로 활동을 시작하면서는 권대봉 교수님, 모든 분들이 내 삶의 스승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따뜻한 격려와 용기를 주신 분들이죠. 영적으로는 이 땅에 오셔서 나의 죄를 사해 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예수님이죠. 그 분을 멘토로 삼은 이유가 있다면, 저 개인적으로는 이 땅의 최고 명강사는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 분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 중에 하나가 설교(강의)였거든요. 힘들고 어려운 분들에게 침구가 되어주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위로하시며 많은 사람들에게 무한의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분이 쟎아요! 그 분에게 받은 사랑을 이웃들에게 조용히 실천하고 싶은 것. 나를 여기에 있게 한 멘토님들께 드리는 보답이라 생각해요. 이성엽 지금까지 생활해 오시면서 어렵고 힘드신 일이 많으셨을텐데, 가장 힘들었던일은 무엇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어떤 성공요인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안병재 자동차 세일즈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세일즈맨에 대한 인격적인 냉대를 당했을 때, 자존심의 상처, 그리고 강사 활동을 면서 고객으로부터 받았던 냉대와 불신, 하지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이 땅에 보내 주신 분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 내가 있도록 만든 성공 요인이 바로 가장 힘들었던 연단의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그 믿음이 있기에 매사 긍정적인 마인드로, 새로운 도전에 끝까지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인내심과 끈기, 이것이 남다른 성공 요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니까 부끄럽군요. 이성엽 요즘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안병재 두 가지입니다. 우선은 이화여대 최고자도자 명강사육성 주임교수로 맡은 일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저보다 몇배 훌륭한 분들이 최고명강사과정에 참가하셨습니다. 차관급 공기업 사장님을 비롯하여, 부총장, 군 장성, 대표이사, 원장, 전문강사 등 훌륭한 분이 많이 참가하셔서 큰 부담이 되고 있지만 제가 존경하는 HRD분야 최고 교수님과 명강사진이 도와주고 있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과정 참가 지원문의가 있어서 앞으로 글로벌 최고명강사과정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에 앞서 가는 프로그램 개발입니다. 재 작년에 한양대 유영만 교수님과 가슴 뛰는 세미나 ‘PING’과정을 성공적으로 개발하여 많은 기업에 보급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PING’리더십과정을 개발하여 W은행에 실행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면 개발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 큰 관심사항입니다. 변화 시대에 고객들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꼭 개발하고 싶습니다. 이성엽 10년후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 것으로 상상하시는지요? 원장님의 꿈과 목표는 무엇입니까? 안병재 이 지구를 떠나고 나면 이렇게 불리우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명강사 문화 개척자’ 또는 ‘인재강국건설의 밀알이 된 사람’ 대한민국 명강사 1,000명을 육성하는 일에 성심을 다 할 것입니다. 최고지도자급 명강사육성이 최고 목표였는데,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성공적으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멋진 목표가 있다면 부족한 저에게 명강사과정을 도움 받은 분들이 대한 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명강사로 불리우는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합니다. 이성엽 리더피아 인터뷰를 하면서 항상 여쭤보는 질문인데요. 나를 여기까지 만든 것을 내가 있게 한 것이 OOO라고 한다면, OOO 에는 무엇이 들어갈까요? 안병재 하나님.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요? 이성엽 가족관계와 간단한 프로필을 소개해 주세요? 안병재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제가 부족한 기도의 후원자로 제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듬직한 아들이 있습니다. 한양대 3학년생인데, 멋진 비전을 가진 녀석이죠. 이성엽 장시간 시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병재 네, 감사합니다. 달변도 아니고 화려한 몸짓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조용하다 할 정도로 수더분하게 이야기하는 안병재 명예회장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진솔함과 순수함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안병재 원장을 통해 바라본 셀프리더의 원칙 : 순수함, 열정, 끈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