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생각을 품으라
빌립보서4:10-20
11/25/2007
오늘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빌립보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세운
유럽 최초의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바울은 아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성령께서 그 길을 막으시고 마게도냐 지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거기에서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기도 하고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빌립보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빌립보교회는 늘 바울에게 빚진 마음이 있었고
바울을 돕고 싶은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성장하여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바울을 돕고, 바울에게 힘이 되어주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정성껏 헌금을 모아 에바브로디도의 편에 전달을 하고
옥에 갇힌 바울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또 바울에게 얼마나 보람있는 일이겠습니까?
바울은 그들의 일을 칭찬하면서 고마움의 편지를 써서 보내게 된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던 초기에 즉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바울을 지원해 주었던 교회는 빌립보교회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빌립보교회는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16절에 보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두 번이나 물질적인 지원을 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그들의 도움을 받고 감사하면서 그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바울의 고난에 동참한 일이라고 14절에서 평가하고 있습니다.
고난에 동참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처럼 고난당하는 그 현장에 가서 함께 있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초상난 집에 조문을 가는 것은 바로 그들이 당한 슬픔에 동참하는 일이죠.
그러나 모두가 다 그 멀리 로마까지 방문할 수는 없습니다.
더 많은 빌립보교인들은 물질을 드려 나누었습니다.
이것도 고난에 동참하는 중요한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초상난 집에 시간이 없어 방문을 하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부조를 보내서 그 슬픔을 나누어지려는 모습과도 같은 일입니다.
선교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사명을 깨달은 사람이 선교현지를 향하여 나가야 합니다.
그곳이 국내이든, 해외이든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으로 나가야 합니다.
즉 바울 사도와 같이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사역자들이 나와야 합니다.
사실 선교적인 열정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선교현장을 가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vision trip도 가고, 단기선교도 가는 것입니다.
사실 한 일주일 혹은 10일 정도의 단기선교가 엄청난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헌신을 통해 선교적인 열매가 맺어지고, 열정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많은 분들은 기도로, 헌금으로 동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선교현지에는 많은 물질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물론 선교가 물질공세만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끝나고 난 다음에 큰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물질적인 지원이 없이 그야말로 맨입으로만은 선교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를 전하기 위하여 그들의 마음을 열어 놓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찾아가는 선교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보내는 선교사는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위해 물질로 동참하는 것은 그 자체가 선교인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 우리교회가 러시아 로스토프에 파송한 최 성찬 선교사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
우선 모처럼 한국방문을 마치고 다시 러시아 선교현지에 잘 도착했다는 얘기와
거기서 겪고 있는 이런 저런 얘기들을 적었습니다.
이제는 종교비자를 받았기 때문에 경찰을 만나도
당당하게 신분증을 제시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이 한국을 방문한 중에 컴퓨터를 만지다가
고장을 내 놓고는 비용이 많이 드니까 고치지도 않고 내버려두었다는 얘기.
그리고 2001년에 우리 여선교회가 1천만원을 후원하여 구입한 러시아제 자동차가
이제는 노후되어 600km가 넘는 장거리 선교지를 방문하고 오는 중에
세 번이나 차가 고장이 나서 이틀이나 호텔을 더 머물면서
1천불을 들여 엔진을 고쳤다는 얘기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교회의 허락을 받아 차를 처분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정말 누군가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는 분이 계시면
자동차를 바꿔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위해서도 물질로 후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많은 분들이 여기에 동참해 주신 것을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전도지만 아니라, 각 세대에 나눠주는 선물이나 교회홍보지,
엘리베이터의 거울 등등 여러분의 헌금은 아주 필요한 곳에 쓰여지고 있습니다.
목양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18절에 보면, 바울은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해 동참하는 손길은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그 손길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십니다.
또한 바울은 19절에서 그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을 바치는 손길들에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결코 굶주리거나 곤경에 처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빌립보교인들이 물질적인 지원을 한 것을 칭찬하는 바울을 보면서
‘바울은 돈을 밝히는 사람인가?’
그 대답은 우리가 11-13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핌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지금 여기서 자기가 가난하기에, 배가 고프기에
도와달라고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한 일을 칭찬하고 격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 사도처럼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가난해져도 비굴해지거나 절망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풍족해졌다고 해서 낭비하거나 거만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 어느 때든지 당당하게 그리스도인답게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빌립보교인들은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향기를 발할 수 있었을까요?
10절 말씀을 읽어 봅시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이 말씀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오는 단어는 ‘생각’이란 단어입니다.
그들은 늘 바울을 생각했습니다.
바울을 도울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나타낼 기회가 없었다가 기회가 생기니까 도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생각의 중요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관건입니다.
모든 행동은 생각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밤낮 생각만 하면 뭐하냐?’고 반문합니다.
그렇습니다. 생각만 하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좋은 생각을 해야 좋은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동을 바꾸기 전에 생각을 먼저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행동을 먼저 함으로,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행동보다는 생각이 우선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에게 질문을 했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런 법칙을 발견했습니까?’
뉴턴이 대답했습니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발견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지만 알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뉴턴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항상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보지만 그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까?
항상 좋은 생각, 최선의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은 별의별 생각들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생각을 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쁜 생각이 스쳐지나간 것은 큰 죄가 아니지만, 나쁜 생각을 품은 것은 죄입니다.
새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내 머리 위에 둥지를 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교회에는 프로 골프 선수, 프로 농구 선수, 프로 축구 선수가 있습니다.
저는 이 선수들이 모두 최고의 선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에 프로 골프 선수인 이 동환 선수의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이금철 집사님, 이봉주 권사님이십니다.
내용은 앞으로 받게 될 상금 중에서 상당한 액수를 장학금이나 자선 사업
혹은 선교사업, 사회복지를 위해 쓰기를 원하는데
기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의논을 했습니다.
왜 이런 의논을 했을까요?
항상 남을 돕고자 하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는 이 동환 선수가 훌륭하고 유명한 선수가 될 줄로 믿습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돈을 모으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특히 제 마음에 감동을 주었던 것은
그 친구 중에 의사가 되어 해외의료선교사가 되기를 원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마음껏 의료선교를 할 수 있도록 돈을 대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우정이며, 신앙의 모습입니까?
남을 도울 생각, 선한 생각, 하나님의 뜻을 자꾸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